AntiCraft

 달항아리의 원래 이름은 백자대호(白瓷大壺) 또는 백자호(白磁壺)이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공예품 중에 손꼽히는 달항아리이지만 이는 사실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달항아리와 조선 백자는 민예적인 것으로 과하지 않은 유려한 선과 한민족의 한이 서려있는 ‘비애미’가 특징인 것이 되었다. 아사카와 형제, 야나기 무네요시 등의 일본 학자들은 그들의 눈으로 우리의 아름다움을 정해버렸다. 이러한 영향은 조선인 문화예술인들에게 그들의 시선으로 백자호를 바라보게 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식민지적 관점을 탈피한 해석 등이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고 그것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의 부각은 침략자의 기호였으며 그들의 전리품이였고 흥미였을 것이다.

 

 강간범의 성적기호로 인해 부각당한 신체적 특성과 미가 피해자에겐 어떤 방법으로도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없다. 조선의 공예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미적 특성과 가치는 이상성애자들의 성적 기호로 인해 특정 부위만 두드러지게 강조된 멍에로 남았다. 이런 달항아리를 성찰없이 통념적으로만 한국 전통적인 공예품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진정한 한국적 공예의 근간은 상실될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동시대 공예 환경에서 한국적인 이미지는 있지만 한국적인 공예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관광 상품화 된 한국적 이미지 상품은 한국적이지 않다. 구글에 서칭하면 흔히 나올거 같은 이미지들로 꾸며진 상품들은 관광명소에서 우리가 아닌 외국인들의 기호에 의해 정해지고 있다. 단청과 운학문, 오방색과 태극 등은 같은 달항아리와 같은 맥락으로 상품화되고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닌 밖에있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되었다. 우리의 것은 우리에 의해 소비되지 않고 그 우리의 것도 사실 우리의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다. 우리의 것에는 달항아리에 문신을 박아넣은 anticraft 작품처럼 우리가 상실되어 있다. 그래서 이걸 우스겟소리로 그것을 비우리(非우리,be우리)라 한다.

 

 달항아리에 이레즈미 문신을 새겨넣은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 진행된 것이다. 달항아리의 일제식 문신을 그려 넣는 것은 그들의 성적기호이자 낙인의 형상화이며 상품화 된 시대적 기호이다. 그래서 그것을 비우고자했고 그것이 우리가 아님을 말하고자 했다. 무민세대의 무의미함은 내게 시각적 특수성에 아무런 걸림돌이 없을음 은연중에 느끼게 만들었던걸까. 조선의 거대서사였던 성리학 토대에서 비롯된 과하지 않음에 무리없이 타자화의 금과 이레즈미를 뒤엎었다. 기존의 달항아리에서 볼 수 없었던 화려함과 이질적인 시각 이미지는 무엇인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가끔은 한국의 것에 문신을 그려넣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시각적 화려함을 좋아했으며 트랜디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니꼴라 부리요가 말했던 포스트 프로덕션 이론처럼 마치 DJ가 노래를 믹싱하듯이 이미지를 뒤섞었다. 동시대적이고 밀레니얼적이며 타자화된 시선을 표상화한 달항아리는 일반에겐 그저 화려한 이쁜 항아리이다. 결국 항아리에 박혀있는 문신은 침략자의 낙인의 상징이자 본질상실과 무의미함에서 비롯된 스펙터클 이미지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 작품을 이해하고 바라본다면 조금은 한국적인 것과 공예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까싶다.